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남성을 자르고 천상의 목소리를 얻은 영화 "파리넬리"
    영화 이후, 이야기 2020. 10. 15. 01:03


    거세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 다음으로 남자에게는 끔찍한 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 영화는 16~18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남성 소프라노 가수’를 일컫는 ‘카스트라토(Castrato) 파리넬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거세를 당한 카를로 브로스키(파리넬리)는 거리의 공연에서 명성을 얻고 성악가로 발돋움합니다. 유럽 전역에서 공연을 펼친 그는 자신의 곡을 작곡해 주는 형 리카르도와 함께 옛 스승 포포라를 돕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향하게 됩니다. 헨델이 국왕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왕립극장과 경쟁 관계에 있는 노블레스 극장에서 공연을 하여 모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헨델의 왕립극장의 경영을 어려움에 빠뜨립니다. 하지만 좋은 음악에 굶주린 카를로는 형의 음악 대신 헨델의 음악을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헨델은 카스트라토라는 자신의 신분에 대해 모욕을 서슴지 않았지만 헨델의 음악성만큼은 인정하고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형 리카르도의 얄팍하고 기교만을 중시하는 음악에 대해 결국 불만을 터뜨립니다. 그러고 자신을 늘 괴롭히던 거세의 비밀, 형에 의해 거세를 당한 것을 알게 되고 갈등을 겪지만 결국 형을 용서합니다.


    ■영화 팔리넬리 진실 vs 거짓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라는 긴 본명을 가진 파리넬리(1705~1782)는 1705년 이탈리아 아드리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노래에 두각을 나타내었는데요.  열두 살의 나이에 거세가 되어 카스트라토의 길을 걸었습니다. 당시 유명한 작곡가였던 니콜라 포르포라의 제자가 되어 혹독한 훈련으로 실력을 쌓습니다. 그의 예명 '파리넬리'는 그의 후원자였던 '파리나' 형제의 성을 본떠 만들었다고 합니다.  1734년 스승인 포르포라와 함께 런던으로 온 파리넬리는 스승의 극장에서 노래를 하였는데요. 영화에서 달리 헨델은  또 다른 카스트라토 세네지노를 가수로 하여 파리넬리와는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었고 헨델은 파리넬리를 노래하는 기계라고 하는 등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영화에서 처럼 헨델은 파리넬리로 인해 극장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맞습니다.

    펠리페5세와 엘리자베트

    이후 파리넬리는 1737년 스페인 펠리페 5세의 부인 엘리자베타의 초청으로 스페인으로 건너가 펠리페 5세의 우울증을 노래롤 치료하고 에스파냐 대공 궁정의 지위를 얻기도 했지만 훗날 펠리페3세와의 불화로 인해 궁정 지위는 잃지만 이미 부를 축적하여 평안하게 살다가 죽기 전 하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모두 골고루 나눠주고 죽었습니다. 그의 형 리카르도 브로스키(RIccardo Broschi, 1698~1756)는 영화에서는 극의 재미를 위해 없는 형제간의 갈등, 실력이 없는 작곡가로 나왔지만  7살 동생 파리넬리를 거세하지도 않았고 영화와는 달리 당시 어느 정도 유명 작곡가로 파리넬리를 위한 작곡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데렛 리 라긴(Derek Lee Ragin)
    에바 말라스 고드레프스키(Ewa Mallas Godlewska)


    영화 파리넬리에서는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서 테너 데렛 리 라긴(Derek Lee Ragin)의 목소리와 소프라노 에바 말라스 고드레프스키(Ewa Mallas Godlewska)의 목소리를 컴퓨터로 합성하여 만들어 영화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최초의 거세는 언제 했을까요?

    거세를 하고 환관이 된 남자들의 기록은 한국 중국 같은 아시아는 물론 그리스 로마 이집트까지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오는요. 유일하게 일본에는 거세한 환관제도가 없었습니다. 언제 한 번 환관(내시), 공주, 해적, 바이킹 관련해서 한 번 다룰 기회가 있으면 좋겠는데요. 최초의 환관 기록은 기원전 1400년 은나라 갑골문자에서 강족을 잡아다가 거세해서 해서 노예로 만들었다. 우리가 낚시하는 사람을 일컬어 강태공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 강태공이 강족 출신입니다. 낭만적으로 낚시를 해서 고기를 낚은 것이 아니라 세월을 낚았다. 멋지게 말을 하지만 세상에 어느 지도자가 낚시터에 있는 노인을 데려다가 작전참모로 모시고 재상 자리를 주겠습니까? 주나라가 은나라를 무너뜨릴 때 차별받고 억압받던 강족의 세력, 즉 강족의 지도자였던 강태공을 끌어들여 새로운 나라 주나라가 세울 수 있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어머니는 헨델?
    요즘도 그렇게 배우는 지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에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어머니는 헨델로 배워서 저는 헨델이 여성인 줄 알았습니다. 왜 둘은 같이 살지도 않았는데 부부가 되었을까요? 두 사람 모두 1685년에 태어나 음악가로서 서양 음악의 토대를 만들고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서 존경의 표시로 '음악의 아버지'와 '음악의 어머니'라는 수식어가 붙게 됩니다. 바흐의 경우 한 번도 독일을 벗어나 유학이나 공연을 한 적이 없을 만큼 궁정과 교회에서 작곡을 한 반면 헨델은 26살에 독일을 떠나 유럽 각지를 돌며 명성을 쌓습니다. 수많은 오페라를 작곡하였고 오페라 극장장이 되기도 했지만
     영화에서 처럼 오페라로 실패를 하자 오라토리오로 작곡의 방향을 바꾸기도 합니다. 바흐가 고집스럽게 독일내에서만 신앙심과 애국심을 바탕으로 작곡을 한 것에 비해 대비적으로 끝내 결국 영국으로 귀화함 여러 가지 대척점이 있어 그러한 표현이 붙은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 자를까요?
    거세를 라고 하면 사람들이 성기 전체를 다 잘라내는 것으로 알 수도 있는데 실제 청나라에서 환관을 만들 때는 둘 다 제거 했지만 조선시대에서는 고환만 제거를 했는데 유럽의 카스트라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갖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성생활 자체는 가능했다고 합니다. 자르더라도 완벽하게는 할 수 없고 조금 남아 있을 수 있어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는 환관들을 주기적으로 검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왜 자를까요?
    당시에 왜? 이런 특별한 가수들이 필요했을까요? 카스트라토는 거세하다는 라틴어 (castrare)에서 유래를 하였는데 비잔티움 제국 당시 거세당한 환관들에게 노래를 시켰다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17~18세기는 바로크 시대에 해당을 하는데요. 절대왕정의 시대로 음악 문화의 중심은 왕족과 귀족들이 즐기던 것으로 화려한고 사치스럽고 장식이 많은 예술을 즐겼습니다. 서민과의 차별화된 삶을 즐겼는데요. 주로 신화나 영웅, 왕들이 주인공인 작품들이었기에 평범한 남자나 여자의 목소리가 아닌 뭔가 신비한 목소리가 필요했고 이에 카스트라토라는 전대미문의 희귀한 가수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단순히 남성호르몬뿐 아니라 남자로서의 삶도 포기했기 때문에 노래가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연습량도 대단하여 초인적인 기교를 부릴 수 있었고 특히 파리넬리는 3옥타브 반을 완벽하게 오르내릴 수 있었고 어느 음에서는 두 음을 빠르게 반복해서 꾸미는 트릴까지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변성기가 지나기 전 10대 초에 미성을 가진 남자아이가 변성기가 오지 않도록 거세를 했습니다. 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한 해에 4000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카스트라토가 되기 위해 거세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중에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성공을 했고 대부분은 실패하여 성불구자로 살거나 자살로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마터면 카스트라토가 될 뻔 한 유명인으로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과 작곡가 로시니에 가 있는데요. 세비야의 이발사, 빌 헬름텔을 작곡한 이탈리아의 작곡가 로시니에는 어릴 적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권유받은 바 있고, 하이든은 좀 더 극적인 것이 워낙 미성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어 당시 마차 수리공이었던 하이든의 아버지는 거세를 하도록 했습니다. 수술 날짜를 기다리던 중 당일날 배탈이 나서 사흘 연기되었고 그 사이 아버지(마티아스 하이든:Mathias Haydn)의 생각이 바뀌어서 카스트라토가 되는 것을 피했습니다. 


    ■거세를 하면 탈모를 예방? 
    1942년 탈모와 남성호르몬 연관성에 관련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해부학자 Hamilton은 연구를 통해 사춘기 이전에 거세를 하여 남성호르몬이 부족한 사람은 설령 집안에 탈모 유전이 있어도 탈모가 생기지 않았고 청년기에 거세를 해도 탈모의 정도가 약해지며 성인이 된 후에 거세를 하면 탈모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반대로 이들에게 남성호르몬을 투여를하자 탈모가 발생 혹은 진행을 하는 것 까지 확인하여 남성호르몬과 탈모의 연관성이 있음을 밝혔는데요. [미국 해부학 저널 71호, 415~480p (1942)]파리넬리는 마지막까지 풍성한 모발을 자랑했을 것입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카스트라토
    이렇게 화려한 기교를 가진 카스트라토들이 어느날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파리넬리가 살아있을 무렵부터 그랬는데요. 18세기 중기에 들어서면서 바로크 시대에서 고전주의로 접어들고 시민계급이 성장하면서 예전의 신비롭고 화려한 오페라보다는 일상생활을 다룬 소박한 오페라가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서 카스트라토가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혁명 이후 나폴레옹은 비인도주의적이라는 이유로 카스트로를 만들기 위한 거세를 금지시켰고 1903년 로마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카스트라토를 금지하면서 카스트라토의 훈련법, 발성법이 모두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레산드로 모레스키


    1922년 타계하면서 음원까지 남긴 알레산드로 모레스키는 역사상 유일하게 음반이 남아 있는 최후의 카스트라토로 유아기때 서혜부 탈장 치료는 위해 거세를 하였고, 성악을 배워 나중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 성가대로 까지 활동을 하였는데 당시 그를 로마의 천사라 불렀습니다. 1902년 4월 교화 8세의 허락을 받아 시스틴 채플의 성가대를 녹음했는데 이로 인해 소프라노 솔로이스트인 카스트라토 모레스키의 음성을 녹음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외에도 당시 몇 명 더 있었지만 유일하게 음반(독창)으로 들을 수 있어 공인된 최후의 카스트라토라고 부릅니다.  파리넬리와 당대의 라이벌인 세네지노, 카파렐리 외에도 19세기 크레쉔티니 등 부와 인기를 동시에 거머쥔 이탈리아 카스트라토들이 대표적이다. 거세로 중성화된 이유였을까. 이들은 대부분 당시 평균 수명보다 훨씬 긴 70세 이상을 살았고  특히 크레쉔티니는 84세에 타계하는 등 장수했습니다.  카스트라토가 사라진 이후 카스트라토를 위해 만들어진 곡들은 이후 여성들이 맡아서 불렀는데 바지를 입고 남성의 배역을 했다고 해서 바지 역(trouser role)이라고 불렀는데 마치 바지사장 같은 느낌이네요. 오늘날에는 여성이 남성역을 하는 것도 보기 이상해서 카운터테너(소프라노의 음역을 구사하는 남성 성악가)들이 부르고 있습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