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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려라 하니 하니는 원래 흙수저가 아니다
    영화 이후, 이야기 2020. 10. 6.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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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니는 원래 흙수저가 아니다


    사실 하니는 원래 그렇게 가난한 집 아이는 아닙니다. 선수 시절 옥탑방에 사는 하니에 비해 그녀의 라이벌이자 대척점이 되는 나애리가 부잣집에 살고 있지만, 사실 그 집 원래 하니네 집입니다. 2층 양옥집에 커다란 나무도 심을 수 있는 마당 딸린 집인데, 하니네가 망해서 나애리 가족이 산 것도 아닙니다. 하니 아버지는 건설 현장 엔지니어링으로 80년대 당시 중동 건설 붐으로 해외에 파견 나가 있었고, 엄마도 없고, 유모 할머니도 없이 혼자 지내는 것이 하니에게 어렵자, 새엄마 유지애가 팔아서 그렇게 된 거였습니다. (그 시절에 유모가 있다니? ) 아직 하니랑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엄마와의 추억이 있는 집을 판 것은 유지애 배우가 조금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도 듭니다. 실제 하니 아버지, 새엄마 둘 다 돈이 많아서 하니 아버지가 중동에서 돌아오면 정식으로 결혼을 해서 더 큰 집에서 살고 그전까지 하니랑 친하게 지내려 같은 아파트에 살려고 했지만 워낙 새엄마를 싫어해서 집을 나와 옥탑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니가 새엄마 볼 떄 마다 하는 말이 우리 아빠 재산 노리고 접근한 나쁜 여자인데 유지애가 무슨 단막극 엑스트라도 아니고 방송국에서 한가락하는 주연급 배우고 지나가는 사람도 다 알만한 배우로 기자회견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는 나름 급 있는 배우입니다. 하니네 집안이 오죽 부유하면 대배우에게 그렇게 대놓고 말할 정도로 유복하게 자랐을 겁니다. 어쩌면 나애리를 보면서 속으로 서민의 삶이란~ 질투의 연속이군!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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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니는 종합 태능인? 


    만화영화 하니는 달려라하니와 말괄량이 하니, 두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달려라 하니 마지막 장면이 좀 뚝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워하던 차에 속편이 나오는 줄 알고 좋아했다가 배경은 더 우울한 갑자기 체조선수로 되어 있어서 당황했었는데요. 80년대 당시 만화계에는 오늘날에 유니버스 세계관과 비슷한 한 캐릭터의 여러이야기에 나오는 방식이 유행을 했었습니다. 아마 캐릭터 만들기 어려워서 그럴 수도 있고, 애착 캐릭터여서 그랬을까요? 다른 예로는 독고탁, 등이 있습니다.


    하니는 육상, 체조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되지 않은 여러 종에서 운동을 하는 하니를 만나볼 실 수 있는데요. 최근에는 평창 올림픽의 영향을 받아 스케이트를 타는 하니가 출간되었는데 30주년으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질 뻔하다가 추억은 추억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팬들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하니의 본래 이름은 날쌘 느낌의 포니였다가 당시 현대자동차의 포니 승용차와 겹친다고 하여 하니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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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애리는 억울하다!


    나애리 한테도 왜 우리 집에 사냐고 시비를 거는 데 솔직히 이 부분은 나애리로서는 짜증날 수 있습니다. 이사한지도 한참 되었고 상대방이 무슨 유딩이나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이 집 매매 개념을 모르지 않을 텐데 나애리 입장에서는 그냥 자꾸 남의 찾아와서 시비 거는 셈입니다. 나애리네 가족이 정식으로 집 계약해서 살고 있고 넣지 말라는 신문을 자꾸 하니가 넣으니 첫 만남부터 서로 좋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당시 신문 끊기 힘들었던 80~90년대 신문보급소의 고질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뺨을 떄린 나애리가 잘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화가 이진주씨에 따르면 본래 하니 이전에 나애리를 주인공으로 만화를 그리려 했었습니다. 애리라는 이름도 자신의 조카 이름에서 따왔고요. 그래서 나애리의 키도 크고 이쁜 외모를 가진 캐릭터였는 데 내용이 변경되어 서브 캐릭터로 되고 또 만화 중간 이후 갑자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출연을 하지 않습니다. 굳이 추측을 하자면 이제 하니와 나애리는 서로 출전하는 육상 종목이 겹치지 않아 만날 일이 없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홍두깨 코치과 나애리 코치끼리도 서로 라이벌이지만 라이벌은커녕 사실상 그 코치가 홍 뚜깨 선생 집안이 가난한 소작농 아들임에도 자기보다 공부도 잘하고 달리기도 빨라 도저히 그를 이길 자신이 없자 돈 주고 깡패들을 시켜 홍뚜깨 선생의 선수생활을 끝내버리는데요. 명랑만화에 어울리지 않는 어릴 적에 봤을 때 좀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마지막화에 뜬금없이 나타나 홍두깨 선생에게 용서를 빌며 마무리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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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니 모델은 임춘애 선수?


    본래 육상은 축구나 야구에 가려져 그렇게 인기 있는 그포츠 종목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인데요. 오죽하면 우리나라가 올림픽에 나가면 적어도 종합 10위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스포츠 강국임에도 육상의 성적은 다른 종목에 비해 아직은 부족한 편이며 일례로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이에게 주는 체육연금도 육상의 경우, 임춘애, 장재근, 이봉주(마라톤), 백옥자(투포환) 정도가 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황영조 선수는 당시에 일시금으로 받아서 연금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86년 아시안게임에 정말 하니같이 혜성 같은 고교 선수가 등장을 하니 바로 임춘애 선수입니다. 달려라 하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임춘애 선수를 떠올리고 저 또한 하니의 모델이 임춘애 선수인 줄 알았는데요. 우연히 시기가 겹쳐서 그렇지 만화가 이진주씨는 특별히 임춘애 선수를 모델로 하고 그리진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달려라 하니는 만화책 보물섬에 처음 연재하던 것이 아시안 게임 이전인 1985년 1원부터 연재를 하여 1987년 6월까지 총 30화 연재하여 1986년 9월 20일에 열린 아시안게임보다 먼저 나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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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춘애 선수는 라면소녀가 아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그것도 비인기 종목인 육상 중장거리 부문에서. 3개나 목에 걸었던 임춘애 선수 임춘애 선수는 당시 일약 스타가 되었는데요.  결승선을 힘겹게 통과한 소녀의 우승 소감은 전설처럼 전해져 온다. “라면 먹으면서 운동했어요. 우유 마시는 친구가 부러웠고요.” 국민들은 안타까움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임춘애 선수는 라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몇 번이고 이를 정정하기 위해 말을 하였는 데 오늘날까지 임춘애 선수하면 라면 이미지가 함께 엮여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영양가보다는 염분이 많은 라면이 운동을 할 때 적절한 음식은 아니죠. 이게 육상부에 지원이 부족해서 간식으로 라면만 먹는다는 식으로 기자에게 이야기한 것이었는데, 기자가 이를 왜곡해서 임춘애를 비롯한 육상부 선수들이 '라면만 먹고 운동한다'라고 기사를 쓴 것이 사실처럼 전달된 것이다. 나중에 그 기자가 왜 그런 왜곡 기사를 작성했는지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도 열악한 육상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좀 더 후원을 많이 받게 해 주려고 인터뷰 내용을 심하게 과장해서 쓴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당시 큰 대회를 앞두고 사람들은 영웅을 원했고, 그것이 가난을 극복한 스토리였기에 사람들은 라면 소녀에 열광했다. 실제로 이 기사가 나간 이후로 상당한 후원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송강호  배우의 지금보다 앳덴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넘버 3에서도 이렇게 나오면서 각인 효과는 풀리지 않는다. 더욱 풀리지 않고  한동안 임춘애 선수는 이 라면 이야기를 정정하고 싶어 했지만 요즘 인터뷰를 보면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임춘애 육상 코치는 한때 칼국수집을 운영했었습니다. 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을 준비하다가 부상으로 은퇴 후 여러 직업들을 하다가 지금은 육상 코치일을 하고 있습니다. 


    달려라 하니는 아기공룡 둘리에 이어 2번째로 주민등록증이 있는 만화 캐릭터로 아니가 다닌 빛나리중학교는 강동구 성내동 성내중학교를 모델로 했고 작가가 그때부터 지금도 성내동에 살고 있어 성내동이 있는 강동구에서 하니에게 민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1월 12일 강동구 성내동에 생태 하니공원이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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